[가족행전] “양반집 큰아들 예수를 믿었으니 곱게 안봤지”
2015-05-17 10:00:23
gae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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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행전] “양반집 큰아들 예수를 믿었으니 곱게 안봤지”

이동헌(64) 장로를 5년 만에 다시 만났습니다. 그가 섬기는 경북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 양동교회를 본보가 다시 찾은 겁니다. 양동마을은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중요민속문화재입니다. 당시 양동교회는 국민일보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교회길’에 꼽혔습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을의 교회이니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그 때가 11월 초였습니다.
그때 취재팀은 이 장로의 안내로 가을 정취가 깃든 마을과 교회를 둘러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과 영성을 깊이 체험한 여행이었습니다.
이 장로의 집은 교회에서 400m 떨어진 고택 이향정(二香亭)이었습니다. 이 고택은 1695년 건립된 목조 가옥으로 ㄱ자형 안채와 一자형 사랑채·아래채·곳간채로 이루어진 조선 사대부 집입니다. 안채와 사랑채가 각 정면 6칸이죠. 온양군수를 지낸 이범중과 그의 맏아들 이헌유가 살았습니다. 이 장로는 그의 후손이고요.
유네스코 문화유산 양동마을 장로의 삶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찾는 이들에게 이향정은 아름다운 한국 건축물이었지만 이 장로 일가에겐 그저 부모 모시고 자식 기르는 집이었습니다. 아파트에 비해 불편한 게 많지만 안채, 사랑채 건너다니며 부모의 기침을 묻고, 자식들 살피는 ‘집’이었던 겁니다. ‘엄마’ 다음으로 행복한 명사가 ‘집’이 아닐까요.
5년 전 우리가 방문한 날은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11월 첫 주일이었지요. 이 장로는 아내 이태순(60) 권사와 모친 정연갑(84) 원로권사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날은 친정을 방문한 맏딸 이신애(36·서울 새문안교회 전도사)씨와 그의 1남1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주일예배 참석을 준비하느라 분주했습니다. 사모인 신애씨는 오랜만에 친정나들이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세계문화유산 지정 첫 해였던지라 그 이른 아침에도 탐방객이 내실 깊숙이까지 디지털카메라를 들이댔던 특별한 아침이었지요.
와중에도 이 장로 가족은 먼 길 오셨다며 안방에 한 상 차려 저희를 맞아주었습니다.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그 유생 같던 시골교회 장로를 언제 기회 나면 다시 한번 뵙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 5월에 그럴 기회가 생겼습니다.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한 부모

지난 11일 이 장로를 다시 만났습니다.
“집을 이사했습니다. 무첨당까지 오시면 제가 무첨당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무첨당(無?堂)은 회재 이언적(조선 문신·1491∼1553) 가옥으로 여강 이씨 종가입니다. 이 장로도 여강 이씨고요. 무첨당과 서백당, 이향정 등은 이 마을 양반이었던 여강 이씨와 경주 손씨의 고택들이라고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두 성씨가 500년을 같이한 반촌인 셈이죠.
무첨당에서 100m의 언덕길을 오르자 ‘이동헌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앞서 종택 이향정에 살며 본가를 함께 관리했던 거죠. 이동헌가는 마을을 굽어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한데 이동헌가는 미완성이었습니다. 문화유산인 만큼 원형 복원이 이뤄져야 하는데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 새마을운동 등을 거치면서 원형이 훼손됐습니다. 최근 복원을 추진 중인데 그 절차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동헌가는 원래 전통 와가(瓦家)였으나 전쟁 중 폭격으로 무너져 양기와로 다시 세웠습니다. 하지만 ‘민속마을’이 되면서 정부가 양기와를 걷어내고 초가를 씌운 겁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 후 전통 와가로 복원해야 하는데 정부 예산이 배정되지 않아 공사가 더딘 듯합니다.
이날은 이 장로의 출가한 둘째 딸 희영(34·목사)씨가 친정 방문을 했더군요. 어버이날 내려와 묵고 있었습니다. 신생아 딸 양예안과 아들 양의찬(3)이도 함께였습니다. 희영 목사 남편은 경기도 광명개봉중앙교회 양동수 전도사입니다. 큰딸 신애씨 남편은 서울 예성교회 엄재광(38) 목사입니다.
이 장로의 아들 충희(32)씨는 서울 번동초교 교사이고 그 며느리 장인애씨도 같은 교직에 있습니다.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희 곧 너 너희와 또 너희 자손을 더욱 번창케 하시기를 원하노라’(시 115:13∼14)고 하셨는데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엡 6:4)한 듯합니다.
정연갑 권사도 변함없이 반기셨습니다. 양반 마을에 시집 와 예수 믿었으니 그 세월이 쉽지 않았겠지요.
중1 담임 “신앙을 갖는 건 참 값진 일”

한데 이 성리학적 전통이 견고한 반촌의 장남은 대체 어떻게 예수를 받아들였을까요. 새벽 제단 쌓는 것을 평생 빼먹지 않은 시골 장로 삶이 궁금해졌습니다.
“안강중 1학년 때였어요. 첫 수업이었고요. 담임 김종성 선생님이 우리에게 노래를 가르쳐 주셨어요. 찬송 ‘어둔 밤 쉬 되리니’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었어요. 그리고 말씀하시더군요. ‘세상 살면서 신앙을 갖는 것은 참 값진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교사로서 참 어려운 가르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앙을 갖는 것은 참 값진 일’.
소년은 이 한 마디를 알아들었습니다.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는 축복을 누린 것입니다.
그는 주일이면 양동교회에 출석했습니다. 어머니 정 권사도 그 무렵 예수를 영접했고요. “아버지도 구원 받고 천국 가셨다”고 말했습니다.
양동마을에 교회가 들어선 것은 1957년이었습니다. 이 마을 출신 이진동 여전도사가 개척했죠. 이 장로는 60년대 포항 동지상고에 진학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교이기도 하죠. 그는 양동역에서 열차 타고 통학했어요. 죽도시장 인근에 있던 포항제일교회는 그가 힘들 때면 기도하던 곳이기도 했고요. 주말이면 교회 생활을 빼놓지 않던 착실한 학생이었습니다.
교회는 이점남 이원종(작고) 등과 같은 초기 교인들의 열성적인 눈물과 기도로 마을 한복판에 번듯한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묘사(墓祀)가 있을 때면 집안 어른들이 교회에 다니는 이원종 성도 같은 이를 나무랐습니다. 묘사를 받들어야 할 손이 조상에게 절도 안 시키는 예배당을 다닌다는 것을 마을 어른들이 좀처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원종 아제가 묘사 자리에서 성경을 내보이며 강단 있게 말씀하신 걸 보고 놀랐어요. ‘성경책에 나쁜 이야기라도 있음 이야기해보소. 말 그대로 복음 아닙니까’라고 성경을 흔들며 말하셨죠. 아, 예수 믿으면 저렇게 두려움 없이 용기를 내야 하는구나, 라고 생각한 계기였어요.”
이 장로는 학교를 졸업하고 인천 부평 풍산금속에 취직했습니다. 처음 고향 언저리를 떠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죠. 그 무렵 결혼도 했고요. 포항 기계 사람 이태순 자매였습니다.

“교회 다닌다는 거 하나 보고 내 배우자구나 확신했어요. 교회 청년이 드물던 시절이었죠. 이 장로가 명문가 출신이라는 게 먼저 눈에 들어왔다면 오히려 혼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거예요. 여자들에게 제사는 무척 어려운 문제잖아요. 주일성수 열심히 하는 건실한 청년이란 소리에 기도로 받아들였지요.”
이태순 권사는 20리(8㎞) 떨어진 양동마을 반가 며느리가 됐습니다. 엄격한 유교문화 속에서 시제사 눈치 보는 며느리였으나 남편이 잘 이해해주어 그것으로 감사했습니다.
“십일조 10만원 할 수 있게…”
이 장로는 인천 부평공장에서 3년 근무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경주 안강공장으로 발령받아 그곳에서 직장생활을 했습니다. 부부는 2녀1남을 두었어요. 70년대 월급은 3만원이었습니다. “십일조를 10만원 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목회자 사례비도 드리기 힘든 교회 재정이었으니까요. 손수혁(68·경주 신라공고 교장) 장로와 재정 등을 맡아 교회 살림을 꾸렸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기도해서 풀었어요. 그때마다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었고요.”
자식에게 그런 부모는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창입니다. ‘아비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았’으며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쳤’습니다. 세 자녀의 교육을 위해 경주시내 아파트를 얻어 생활하게 했고 그 자녀들은 주말이면 꼭 양동마을에 내려와 주일학교와 청년부 활동을 했습니다.
“교회 품에서 저희들이 알아서 컸지요. 저야 월급쟁이였고 퇴직 후엔 농사를 지었으니 근근할 수밖에요. 아이들은 말씀 안에서 스스로 목표를 두고 공부했어요. 셋 다 공부를 잘했어요. 큰딸과 작은딸은 기도 가운데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에 진학해 선후배가 되었어요. 목사님도 추천한 학교이고요.”
그 자녀들은 지금 교회와 학교라는 현장에서 하나님 인격을 심어주는 리더가 됐습니다. 그들은 월급을 타면 아버지가 그러했듯 그 십일조를 모교회를 위해 바칩니다.
“명절 때면 아들과 함께 추모예배를 봅니다. 그리고 곧 딸들과 목회자 사위들이 환하게 들어오지요. 저는 시편을 자주 봅니다. ‘내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오며 주의 기사를 전하리다’(시 9:1)고 했어요. 예수를 증거하는 가정이 되어야지요. 우리가 경배하면 합당한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 어떠하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로써 구하고, 새벽 제단을 쌓고, 교회 식구들을 내 가정으로 여기면 내 자녀에게 본이 됩니다.”
그는 시골교회 장로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깊이가 있습니다. 반가에서 평생을 살아온 체신의 기품, 교회 생활로 인한 청교도적 정신을 갖춘 크리스천이죠. 치리 장로를 넘어 학문과 덕을 갖춘 반가 교회 장로라는 수식이 어울릴 듯했습니다.
경주=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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